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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크심리학 - 루크 페르난데스, 수전 J. 맷
    독서 아카이브/2020년 2020. 8. 23. 17:26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감정이라는 것은 어떤 기분을 나타내는 고정된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과거의 허영심, 지루함, 경외감 등은 지금과는 뉘앙스가 바뀌었다.

    그리고 변화의 장본인은 200년 사이에 일어난 기술의 발전으로 부터 생긴 변화이다.

    테크 심리학 - 루크 페르난데스, 수전 J. 맷

    이 책은 아래의 6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이 담겨있다.

    1.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을 자아도취에 빠지게 하는가?
    2. 인터넷이 현대인이 겪는 고독의 원인인가?
    3. 디지털 기기 때문에 지루함을 견딜 수 없게 되었는가?
    4. 멀티태스킹 환경으로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는가?
    5. 디지털 환경에 지나치게 노출된 나머지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게 되었는가?
    6. 소셜 미디어는 분노를 조장하는가?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을 자아도취에 빠지게 하는가?

    19세기초만 해도 미국은 종교의 권위가 일상생활에도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신앞에 나약한 인간이 허영심을 품는다는 것은 죄악시되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서 자랑하는 것은 불경한 행위였다. 그러다 편지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예외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허용되기 시작했다. 멀리 있는 그리운 친구나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자신이 지금 뭐하고 사는지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편지를 보내지 않는 것이 자아도취에 빠진 허영이라고 받아들였다.

     

    이러한 변화는 사진이 대중화되면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사진은 영원히 남는다는 인식에 처음에는 장례용으로 많이 찍었지만 사람들은 점점 잘꾸며진 사진을 원했다. 그때는 뽀샵이 없었지만 물리적 조작을 통해 외모를 돋보이게 하거나 책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면서도 책을 옆에 두어 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사진산업 자체가 허영으로 먹고살게 되었다. 한 달 전쯤 바이오 테마에 붙으면서 주가가 1000% 넘게 오르기도 했었던 코닥이라는 회사가 처음으로 휴대용 필름 카메라를 판매하면서 이제 사진은 언제 어디서나 찍을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은 주로 즐거운 순간을 필름에 담아냈다.

     

    지금은 플렉스의 시대가 되었다. 온갖 자기자랑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19세기 사람들이 본다면 사탄이라고 부를지도 모를 셀카와 자랑들이 SNS에 넘쳐나고 있다. 옛날에는 인간의 인생은 한순간이고 보잘것없는 덧없는 것이라 보고 자아도취를 경계했지만 지금은 자기 자신에게 빠져드는 나르시즘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따봉을 받고 댓글이 달리느냐로 허영심을 채우고 있다. 그러니까 허영심은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며 느끼는 감정에서 대중에게 관심을 얻고 평판을 유지하는 것으로 의미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이 현대인이 겪는 고독의 원인인가? 디지털 기기 때문에 지루함을 견딜 수 없게 되었는가?

    옛날에는 대부분이 고독함을 받아들였다. 그저 하루종일 농사짓고 잠자는 게 똑같은 일상의 대부분이었으니까. 지루함은 일을 할 필요가 없는 특권계층이 느끼던 무료함이었다. 남는 시간에 도무지 할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우리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언제든지 몇 번의 손가락 움직임으로 지루함을 막을 수 있다. 외로움도 인터넷이라는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점점 독신 인구가 늘고 이성에 관심이 없는 이른바 초식남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디지털기기와 상관계수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문제는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지만 외로움이 사라진것은 아니다.

    고독과 외로움 단어의 사용빈도

    고립되었다는 고독감은 줄어들었지만 군중속의 고독, 외로움은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도구들은 많아졌다. 할 게 없으면 바로 핸드폰을 꺼내는 것처럼.

     

    멀티태스킹 환경으로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는가?

    지금시대는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세상도 엄청나게 빠르게 변하고 돌아가고 있다. 우리들로서는 알아야 할 데이터가 너무 많아졌다. 옛날에는 두뇌의 능력이 유한하다고 보고 너무 신경을 쏟으면 문제가 생긴다고 보았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도 사람들은 적응해내고 있다. 컴퓨터도 처음에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못했지만 지금의 운영체제는 기본적으로 멀티태스킹 환경이다. 한 번에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열고 인터넷도 여러 개의 탭을 연채 사용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수많은 소음과 정보가 뒤섞인 채 여러 가지 일들을 병렬적으로 순간적으로 집중해서 처리해야 한다.

     

    디지털 환경에 지나치게 노출된 나머지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게 되었는가?

    예전에는 허영심이 죄악시 되었던 것처럼 인간의 유한함과 자연과 신에 대한 경외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인류는 호모 데우스가 되어가고 있다. 전보, 전화, 라디오 같은 기술적 도구들이 처음 나올 때 신의 도구라는 경외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이러한 기술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돌돌 마는 롤러블 TV가 나오고 심지어 접을 수 있는 폴더블 폰도 나오지만 사람들은 금세 싫증을 낸다. 그리고 몇 달 후면 업그레이드된 새 제품이 나온다. 경외감 또한 인간의 무력함에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기술에 대한 감탄으로 바뀐 것이다.

     

    소셜 미디어는 분노를 조장하는가?

    과거의 분노는 남자다움의 상징이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백인남성만 표출할 수 있는 것이고 여성과 흑인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분노는 불의에 대한 의분 같은 도덕적인 것이나 자신의 의견을 보이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옛날 서부영화를 보면 결투를 그렇게들 많이 한다. 하지만 공공기관과 대기업에 인사부서가 생기고 관료적으로 바뀌면서 분노는 공공연하게 들어내서는 안 되는 감정이 되었다.(리더들은 예외) 속을 삭이던 사람들은 차 안이나 집에서 분노를 뿜었다.(그래서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본성이 어떤지 파악이 좀 된다)

     

    소셜 미디어는 좋은 무대가 되었다. 물론 여기서도 대중적 평판은 좋게 유지할 필요가 있어 분노를 들어내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것을 신경 쓰지 않거나 익명성이 보장될 때는 가감 없이 드러낸다. 페이스북 같은 기업은 이러한 감정을 비즈니스적으로 잘 이용했다. 사람들이 눈길을 끌만한 글들만 추천을 해주고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온라인상에서 분노는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했다. 자신의 성향과 맞는 글들만 보고 나머지는 거부하거나 보이지도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나로 단결이 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도구는 문화를 바꾸고 문화는 사람들의 감정을 바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모든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외로움과 분노를 느낀다. 결국 해결책은 도구를 쥔 인간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개인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고 갈등을 해결할지, 세상에 어떻게 기술을 활용하고 제한할지 우리가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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