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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독서 아카이브/2022년 2022. 2. 21. 20:58

    저자가 일곱 살이었을 초여름 때, 가족이 휴가차 매사추세츠주 웰플리트로 가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쌍안경으로 습지를 바라보다 소녀는 문득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물리학자였던 아버지는 저자에게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통보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어린 소녀의 세계관에 혼돈이 처음으로 들어서는 때였다.

     

    저자가 열여섯 살이 된 봄. 가족 모두가 잠이 들었을 때, 홀로 지하실에 내려가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도 병원에서 깨어났지만 그녀의 인생은 이미 혼돈에게 패배한 상태였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계피 냄새가 나는 곱슬머리 남자를 알게 된다. 몇 년이 걸려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었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해 함께 살기 시작했다.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 바로 안식처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해변에서 만난 소녀에게 입맞춤을 하며 저자 스스로의 안식처를 망쳐버렸다. 곱슬머리 남자는 떠났고 친구들도 멀어졌다. 그녀는 다시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서있었다. 바로 그때,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야기가 기억에서 살아났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조던은 1851년 뉴욕 주 와이오밍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분류하기를 좋아했던 소년은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을 보며 별자리를 외웠고(그의 미들네임이 스타(starr)가 된 이유다), 자신의 동네 지도를 그렸으며, 온갖 꽃들의 이름을 열정적으로 외웠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1851~1931)

    중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청년이 된 조던은 지질학자 루이 아가시가 이끄는 여름캠프에 자원하며 인생 일대의 변화를 맞게 된다. 페니키스 섬에서 이루어진 이 캠프에서 물고기를 채집하며 분류하는 작업은 당시 발견된 물고기의 5분의 1에 달하는 어류를 분류하며 당대 최고의 분류학자가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자신의 아내도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루이 아가시가 주장했던 바가 자신의 사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루이 아가시는 1859년 발표된 종의 기원을 믿지 않았다. 종에는 자연의 사다리가 있으며 모든 종을 분류하는 생명의 나무를 완성한다면 신의 계획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계층 밑에 있는 생물들과 계층 사다리 맨 위에 존재하는 인간을 비교하여 그들이 어떠한 도덕적 차이가 있는지 밝혀내 계층 밑으로 떨어지는 일을 방지하자는 일환으로 페니키스 섬에서 캠프를 열게 된 것이다.

     

    루이 아가시보다 젊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승을 존경했지만 다윈의 이론도 받아들였다. 계층을 만들어 내는 것은 신의 선택이 아닌 시간이라는 관점을 만들어 낸다. 그리하여 멍게나 따개비처럼 한때 자력으로 움직이며 생존했던 종들이 게으름 등의 이유로 땅에 가만히 박혀 기생하며 살아가는 열등한 퇴행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인간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분류하는 일은 어릴 적 하던 취미생활이 아니라 신의 섭리를 완성하는 일생에 과업이 된 것이다.

     

    그 후로 승승장구한 조던은 1885년 인디 애나 대학에 34살의 나이로 최연소 총장이 되었고 1891년에는 무려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학장이 되었다. 빵빵한 자본력이 생긴 그는 미국 대륙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바다를 휩쓸며 물고기를 잡는데 열중한다. 수십 년에 걸친 노력으로 스탠퍼드 대학에 물고기가 가득하던 1906년 어느 날 지진이 들이닥친다. 그간 쌓아 올렸던 물고기들이 깨진 유리병에 의해 절단되고 부패하고 이름표들이 섞여 들어 구분할 수가 없었다. 질서를 쌓아 올리던 일생일대의 과업이 혼돈 속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진도 그의 마음까지는 흔들지 못한 거 같다. 그가 즉시 시작한 일은 물을 뿌려 물고기들이 마르지 않게 하고, 분류할 수 있는 물고기들을 찾아 살에다가 이름표를 꼬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시 지하실로 내려가고 싶은 저자가 지상에서 찾고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반등을 보여줬을까? 실제로 조던은 자신의 아내가 병으로 죽고, 아이가 사고로 떠나고, 물고기를 찾으러 떠난 동료가 실종되고, 지진이 일어나 모든 것을 수포로 되돌려도 스프링처럼 튀어나가 더욱 강력해진 방법으로 물고기를 찾아내 분류하였다.

     

    혼돈에 조던이 패배하지 않은 비결은 지진이 있은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본인이 쓴 에세이에 드러나 있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이 말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신의 섭리인 자연의 사다리를 구축하던 자에 입에서 운명은 사람의 의지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도 역경 앞에서는 자기기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기기만에 대한 시각은 성서, 고대 그리스, 계몽주의, 20세기 중반까지 자기기만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임상심리학자들이 시련을 빨리 회복하는데 자기기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긍정적 착각이 가져다주는 치유 효과는 이후 광범위하게 퍼져나갔고 그릿이라는 책까지 나오게 된다. 하지만 다시 바우마이스터를 토대로 자기기만은 부작용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 그것은 치명적이었다. 자기기만은 자신을 공격해오는 것에 큰 공격성을 띄게 하고 모든 것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한다.

     

    조던을 스탠퍼드 총장으로 세운 것은 설립자 릴랜드와 제인 스탠퍼드 부부였다. 릴랜드가 죽고 나자 제인 스탠퍼드 부인이 학교 운영에 관여하였는데, 조던이 자신의 부하의 스캔들을 덮어버리고 마음대로 대학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제인이 그를 해고한다는 소문이 횡행하던 때 사건은 일어났다. 제인은 불과 2주 후 독이 든 물을 마시고 죽을 뻔한 것을 간신히 토해내어 살아났다. 이에 불안을 느낀 제인 스탠퍼드는 하와이로 휴가를 떠났지만 다시 그곳에서 독살당하고 만다. 하와이의 의사들은 스트리크닌에 중독되어 사망하였다고 보고했지만 캘리포니아에 있던 조던은 그 소식을 듣고 하와이로 향했다. 그리고 새 의사를 고용해 사건을 재검사하고 하와이를 떠나기 전 작성한 성명서를 통해 부적절한 음식의 과다 섭취로 발생한 심부전에 의해 사망한 것이라고 발표한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제인의 관을 나르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조던이 제인을 독살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정황상 시기가 너무 오묘했고, 사망 이후에 행동도 미심쩍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그가 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던 방법 중 하나로 스트리크닌을 물에다 풀어서 수면 위로 떠오른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는 우생학을 전국을 돌며 미국에 퍼트려 부적합자를 선별해 불임수술을 받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그가 일생에 거쳐 집착했던 생명의 사다리대로라면 퇴화의 개념에 들어맞는 사람들이 번성했을 때 인류는 새로운 인간의 종으로 퇴화할 것이라는 걱정을 했다. 덕분에 20세기에 거쳐 미국에 있는 죄수들, 혼외 출생자, 저지능자와 문란해 보이는 여자들은 불임수술을 당하게 된다.

     

    종의 기원을 쓴 다윈은 변이(다양성)야 말로 종의 미래를 보장하는 힘으로 보았다. 하지만 조던은 부적합자를 골라내 박멸하려 했다. 다윈은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조던은 자연의 사다리를 믿었다. 애초에 그러한 질서는 없었는데 말이다. 결국 세상은 혼돈이다. 맹목적 믿음과 자기기만이 가상의 질서를 만들고 현실을 거기에 끼워 맞추려던 시도는 이렇게 끝이 났다.

     

    조던에게서 희망을 찾던 저자도 포기하고 여기서 끝을 내야 하는가?

     

    삶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인가. 저자는 조던의 노력으로 수용소에 끌려가 불임화 당한 애나에게서 찾았다. 애나는 일곱 살 때 수용소로 보내졌다. 부모의 가난과 애나의 낮은 지능검사 지수는 부적합자로 간주하기에 충분했다. 아이를 갖는 것이 꿈이었던 애나는 끔찍한 수용소 생활을 몇 년간 견디던 중 메리라는 어린 새로운 수감자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열아홉 살이 된 애나는 탈출을 시도하지만 얼마 안 가 붙잡히고 검사실에 끌려가 강제로 불임화 수술을 당한 뒤 풀려난다.

     

    애나는 여전히 수용소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자신이 보호했던 메리와 함께. 유년시절 끔찍한 곳에서 갇혀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가 버팀목이 되어 깊은 우정과 감사를 느끼며 버젓이 잘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공과금 납부를 도와주는 이웃, 무보수로 몇 년간 소송으로 불임화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아준 변호사, 언제나 반가이 맞이하는 아파트 접수 계원과 매일 아침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에 대해 반박의 말을 찾아냈다. 우리는 중요하다! 우리는 그물망이다. 한 부위로서 톡 잘라낼 수 없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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